초청작

Invitational











시놉시스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R(문성근)은 파리에서 동거했던 여자 J(강수연)와 재회한다. 그러나 웬일인지 JR과의 섹스를 거부한다. 화가 난 R은 고향인 대구로 내려간다.

R은 오랜만에 아내(김보연)와 자식들과 만나지만, 기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족이 환멸스럽기까지 하다. R의 머릿속은 온통 J와의 섹스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R은 출강차 서울에 올 때마다 J를 만나지만, J는 프랑스가 아니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섹스를 거부한다. RJ가 자신이 써준 논문으로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고 또 한국에서 자신의 글로 문학비평가로 데뷔까지 했지만 자신을 거부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배신감을 느낀다. J를 비난하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R은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하고 J에게는 한국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R은 다시 J에게 배신당한다.



BHIFF NOTE

한국 멜로드라마의 새로운 길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 길>

이용철 - 영화평론가

 

하일지가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당시로선 다소 난해한 성향의 작품이었으나, 1990년대 극장계에 불었던 문화적 욕구는 이 작품의 흥행에도 일조했다. 원작이 문체와 구조 측면에서 주목받았듯이, <경마장 가는 길>에서 우선 눈에 띄는 부분은 음성 및 대화다. 태생적으로 영화는 오디오적 콤플렉스를 지닌 매체인데, 한국처럼 영화산업이 늦게 발전한 나라에선 열악한 오디오의 해결이 오랜 숙제였다. 영화는 이미지의 예술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떠올리면 먼저 기억되는 것은 강수연, 문성근, 김보연의 얼굴이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성우가 후시로 녹음한 영화가 극장에 걸렸음을 감안하면, 주연을 맡은 강수연과 문성근이 또렷하게 녹음한 음성은 일취월장한 수준이었다. 소설의 문체처럼, 영화에서 인물의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뒤늦게 알게 된 셈이다. 음성과 더불어 중요한 부분은 대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주인공 R의 친구)의 건조한 앞뒤 내레이션은 원작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그 내레이션의 화자가 대체 극 중 어떤 시점인지 알 수 없다는 것부터 수상하다. 대화의 결정적 재미는 당연히 주인공인 RJ에게서 나온다. 그 유명한 R의 대사 - 너 그동안 남자 생겼니. 그럼 왜 이러느냐, 너의 이러한 행동의 이데올로기는 뭐냐. - 로 대표되는 기이한 어투와 J의 전형적인 서울 여성 말투는, 문성근의 힐난조 및 강수연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결합하면서 극한의 매혹을 발휘한다. 거기에 R의 아내 입에서 나오는 거친 경상도 사투리는, 외국에서 돌아온 R이 맞서려고 애쓰는 한국적 현실을 대변한다. 이러한 오디오적 특성은 단순히 영화적 스타일에 머무르지 않고, 이 영화의 장르적 태도와 결합하면서 미증유의 멜로드라마를 완성한다.

 

멜로드라마라고? 당시엔 원작을 따라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라고까지 불렸던 영화인데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라니. 그런데 이 영화의 줄거리를 적어보면 극장과 TV에서 보았던 멜로드라마와 별로 다를 게 없다. RJ는 프랑스에서 3년 반의 시간을 동거했다. 그동안 RJ의 논문을 대신 써줬고, J가 귀국한 뒤 뒤늦게 자신의 논문을 완성한 R도 한국으로 돌아온다. 비밀이 들통날까 두려운지 J는 프랑스에서와 전혀 딴판으로 행동한다. 경상도에 사는 가난한 가족과 노쇠한 부모가 부담스러운데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내로 인해 짜증이 난 RJ에게 다시 외국으로 가자고 종용한다. 프랑스와 문학박사라는 소재만 빼면, 두 여자 사이에서 온갖 장벽을 헤쳐 나가야 하는 R은 전통적인 멜로드라마의 인물로 기능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멜로드라마로 보이지 않는 것은, 장선우가 멜로드라마의 전형성을 조롱하는 것인지, 아니면 건조한 멜로드라마의 형식을 쓰고 싶은 것인지 잘 알 수 없다는 데서 비롯한다. 기실 이건 루이스 브뉴엘의 <욕망의 모호한 대상>이 멜로드라마에 가한 충격과 같은 작품이다. 오죽하면 <경마장 가는 길>은 멜로드라마라기보다 입으로 쓴 로드무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분명한 사실은 <경마장 가는 길>이 한국 멜로드라마에 혁명적인 매스를 갖다 댔다는 점이다. 일례로, 장선우는 놀랍게도 그 시기에 이미 멜로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드러내는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특성을 감지했을 뿐만 아니라, J와 아내라는 두 여성을 통해 그것을 해체하도록 행동하게 만든다. J와 아내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지만,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두 인물은 영화 내내 R의 허세를 까발린다. 영화의 엔딩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가능한데, 어떤 면에서 봐도 R은 두 여성에게 원했던 바를 조금도 얻어내지 못했다.

 

1980년대에 등장해 리얼리즘 영화로 사회에 대한 예리한 시각을 견지했던 장선우에게 <경마장 가는 길>은 노선의 변화를 감지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를 원작과 연결해 포스트모더니즘 계열로 읽는 건 지나치다. 굳이 말하자면 이 영화는, 위에 언급했듯이 모더니즘 계열의 영화로 보는 게 맞다. 그런 가운데 장선우는 몇몇 삽입 장면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다방 장면에서 껌을 팔러 다니는 소년, 밤거리에서 손님에게 인사하는 유흥업소 종업원, 엔딩에 나오는 노인들처럼 영화의 줄거리와 상관없는 인물들을 문득 바라본다. 카메라가 그들로부터 눈을 돌리기도 전에, R은 차갑고 귀찮다는 표정으로 그들의 존재를 외면한다(엔딩의 노인에 도착해서는 태도가 달라진다). 그러면서도 말끝마다 서울과 한국의 풍경과 인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그는 대체 어떤 인물인가. <경마장 가는 길>에 등장하는 지식인의 초상은 오히려 이후의 시간을 통해 더 확인되고 증명되었음을 기억한다. 허위로 얻어낸 학력과, 그것에 얽힌 구차한 변명과, 학문보다 돈과 명예에 더 종속되는 지식인,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권력층이 꾸민 웃지 못할 코미디를 우리는 21세기 내내 목도했다. <경마장 가는 길>은 예언서가 아니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그 영화적 매력만큼이나 존재감을 잃지 않는 것은 장선우의 탁월한 시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가 정작 21세기 영화판에서 힘을 잃어버린 현실이 또 한편의 코미디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