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작

Invitational












시놉시스

"끝까지 살아남아"

엄마 영화는 재미없다는 아들과 늘상 밥타령인 남편, 잇따른 흥행 실패로 슬럼프에 빠진 중년의 영화감독 지완. 아르바이트 삼아 60년대에 활동한 한국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 홍은원 감독의 작품 <여판사>의 필름을 복원하게 된다. 사라진 필름을 찾아 홍감독의 마지막 행적을 따라가던 지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자 쓴 여성의 그림자와 함께 그 시간 속을 여행하게 된다.




BHIFF NOTE

살아남을 것이다. 꼭 그럴 것이다.

신수원 감독의 <오마주,2022>

 

조지훈 -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래머

 

신수원 감독은 2009년 장편영화 <레인보우>로 데뷔했다.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이기도 했던 이 영화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영화감독의 꿈을 선택한 기혼 여성 감독 지완의 좌충우돌 악전고투 첫 영화 제작기다. 좀처럼 이룰 수 없는 영화연출의 꿈을 쫓는 감독지망생 엄마의 고단한 일상과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아들이 밴드를 만들어가는 성장담을 유쾌하게 포개놓은 이 영화에서, 꿈은 제목처럼 무지개빛 희망이고 삶을 추동하는 강력한 에너지다. 이때만 해도 그랬다.

 

2009년으로부터 약 23년의 시간이 흐른 후, 신수원 감독은 <레인보우>(2009)에서 영화감독의 꿈을 꾸었던 지완을 2022년 영화 <오마주>에 다시 등장시킨다. 이제 중년이 된 영화감독 지완은 그동안 몇 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상도 받으면서 나름 영화계에서 인정받는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레인보우>의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했고, 돈 문제로 여전히 남편에게 구박받고 있으며, 이제 대학생이 된 아들이 엄마를 바라보는 무시와 애정, 걱정이 뒤섞인 시선은 <레인보우>의 중학생 아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유야 늘 같다. 창작은 그 자체로 경제성이 없는 일이고 그래서 창작을 업으로 하는 사람의 삶은 고달프기 쉽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영화감독인 줄은 알아도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없고, 가족에게는 맨날 돈 안되는 영화나 만드는 감독일 뿐이다. 더구나 이제 막 개봉한 그의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다. 23년 전 <레인보우>에서 무지개빛 꿈을 꾸었던 지완은 이제 힘들게 이룬 꿈을 계속 꾸어야 할지 고민한다. 이제 꿈은 희망이 아니라 들기엔 무겁고 쉽게 버릴 수도 없는 감당하기 버거운 짐이 되었다.

 

상황이 이쯤 되면 누구나 그동안의 인생을 통째로 복습하고 싶어질 것이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이런 시기가 한 번씩 찾아오지만, 이번엔 그렇게 쉽게 넘기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지완은 운명처럼 한국영상자료원으로부터 한국의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이었던 홍은원 감독의 1962년 연출작 <여판사>의 사운드 복원을 의뢰받는다. 적은 돈이라도 필요했던 지완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돈은 안되지만 의미가 있는이 복원 작업을 맡기로 한다. 그리고 우연히 확보한 사진을 단서 삼아 세상을 떠난 홍은원 감독의 주변 인물들을 만나며 유실된 사운드와 함께 삭제된 영상을 함께 찾기로 한다.

 

하지만 지완이 찾아야 하는 건 <여판사>의 유실된 사운드와 영상만이 아니다. 지완은 요즘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복습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오랜 동료가 영화를 그만두었고, 건강 이상으로 자궁을 잃었다. 남편은 자기를 포기한 것 같고, 아들은 이제 집을 떠날 것이다. 돈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지완은 이 모든 이유가 자기가 영화를, 그것도 돈이 안 되는 영화를 오래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 가지 일을 오래하면 누구나 자기 확신과 자기 의심 사이에서 줄을 탄다. 자기 확신이 커지면 일이 즐거워지고, 자기 의심이 커지면 일이 두려워진다. 지완은 지금 너무 커져버린 의심 속에서 두려움과 싸우고 있다. 아파트의 주차장에서 발견된 자살한 여성과 집을 떠난 후 다시 돌아올 기미가 없는 옆집 사람에게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건 그들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해온 연출 일에 어느 순간 의심을 하게 된 영화감독 지완이 70년 전 자기 의심과 두려움에 몸을 떨면서도 영화감독으로서 삶을 살아냈던 선배 여성 영화감독 홍은원의 환영과 함께 그가 남긴 영화를 복원해나가는 이 영화는 과거의 소중한 영화 유산을 되살리는 아름답고 뜻깊은 여정일 뿐 아니라, 가혹한 현실 속에서 너무 커져 버린 의심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기 확신을 다시 키우는 지완의 자기 치유와 성장의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이 과정은 잘 늘지 않는 지완의 수영 실력처럼 쉽지 않을 테지만, 중요한 건 지완이 수영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23년 전 <레인보우>의 지완은 5년간 시나리오만 쓰면서도 끝까지 꿈을 선택했던 이유를 잊지 않았다.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그건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오마주>의 지완은 그래서 현실적인 문제들과 결과에 크게 연연하거나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면서 사람에 대한 영화를 계속 만들어 왔을 것이다. 홍은원 감독의 동료였던 편집기사가 지완이 새롭게 찾아내어 되살린 영상 속 홍 감독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지막이 내뱉은 자넨 끝까지 살아남아라는 말은 이렇게 성장해온 지완을 향한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처럼, 선배의 애정 가득한 조언이다.

 

신수원 감독은 <오마주>를 통해 1962<여판사>의 홍은원 감독과 2009<레인보우>의 지완과 2022<오마주>의 지완을 가장 영화적이고 감동적인 방법으로 한자리에 모아 한 명씩 오버랩시킨다. 거기엔 <오마주> 속 편집기사의 자리도, 지완과 닮은 신수원 감독의 자리도, 감독을 꿈꾸는 다른 후배의 자리도, 이 글을 쓰는 나의 자리도 있다. 그들은 모두 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지완은 분명히 다시 영화를 만들 것이고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꼭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