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작

Invitational











시놉시스

짐수레를 끄는 홀아비 마부인 춘삼(김승호)은 고등고시를 공부하는 장남 수업(신영균), 언어 장애 탓에 못된 남편에게 맞고 쫓겨 오기 일쑤인 맏딸 옥례(조미령), 가난한 집안 형편에 불만을 품고 신분 상승을 꿈꾸는 작은딸 옥희(엄앵란), 도둑질을 일삼는 막내 대업 등 네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마주(주선태) 집의 식모살이를 하고있는 수원댁(황정순)은 가난한 마부인 춘삼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둘 사이에는 애틋한 감정이 오간다.

장남은 세 번이나 고등고시에 떨어지고, 큰딸은 남편의 학대에 못 이겨 한강에 투신해 자살하며, 작은딸도 부잣집 아들에게 농락당하는 등 온 가족이 시련을 겪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춘삼은 사장의 자동차에 말이 놀라 다리까지 다친다. 게다가 마주는 말을 팔겠다며 마부 일을 그만두게 한다. 수원댁은 식모 일을 하며 모아둔 돈으로 그 말을 몰래 사서 춘삼에게 돌려준다. 마침내 장남 수업이 고시에 합격하던 날, 모두 모인 가족들은 수원댁을 어머니로 모신다. 새로운 희망에 부푼 춘삼의 가족들은 눈이 내리는 중앙청 거리를 함께 걷는다.


BHIFF NOTE

가난의 초상, 여성을 통한 가부장제의 복원

강대진 감독의 <마부, 1961>

 

조지훈 -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래머

 

강대진 감독의 <마부>19612월에 개봉했으니, 이 영화의 배경은 19604.19 혁명과 19615.16 쿠데타 사이 언제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했던 정치적 격변기였고, 마차에서 자동차로, 한복에서 양복으로의 이행이 시작되고, 교육을 통해 엘리트가 된 세대가 최초로 등장하면서 전근대적 가치와 근대적 가치가 충돌과 공존을 거듭했던 변화의 시기였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의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현실을 살아내느라 정신없었지만, 그만큼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열망과 삶의 에너지가 충만했던 시기기도 했다. <마부>는 주인공 춘삼과 그의 가족들의 일상을 통해 이러한 당대의 시대상을 현실감 넘치게 담아낸다.

 

홀아비 춘삼(김승호)은 마주(주선태)로부터 말을 빌려 짐수레를 끄는 마부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회사에 소속된 트럭운전사쯤 될 것이다. 벌이가 시원치 않아 어려운 형편이지만 아들 둘 딸 둘, 4명의 자식들과 함께 그럭저럭 살고 있다. 지금의 공무원 시험에 해당하는 고등고시를 준비하는 장남 수업(신영균)은 벌써 세 번이나 시험에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험을 볼 생각이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고민이 많다. 말 못하는 의사소통 장애를 가진 맏딸 옥례(조미령)은 시집을 갔지만 맨날 못된 남편의 폭력을 이기지 못해 처가로 도망쳐 오는 신세다. 옥례는 춘삼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다. 가난을 벗어나 신분 상승을 꿈꾸는 작은 딸 옥희(엄앵란)는 예쁘게 차려입고 다니면서 돈 많고 멋진 남자를 만나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영화의 첫 장면에서 우리를 춘삼의 집으로 안내하는 막내아들 대업은 맨날 싸움과 도둑질을 하는 말썽쟁이다. 이렇게 아직 밥값 못하는 자식들을 건사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고단한 일상이지만, 춘삼에게도 가슴 뛰는 일이 하나 있다. 매일 드나드는 마주집의 식모 수원댁(황정순)과 애틋한 관계인 것이다. 수원댁은 다른 마부들 몰래 가난한 춘삼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춘삼과 수원댁은 데이트를 즐기며 애정을 키워간다.

 

<마부>가 담아내려고 하는 건, 무엇보다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식들을 위해 끊임없이 헌신하는 전통적 의미의 아버지의 모습이다. 춘삼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뜻하지 않게 아버지의 무능, 나아가 남성들의 무능이 드러난다. 자동차가 들어오면서 직업적 가치가 하락한 춘삼의 벌이로는 온전히 가족의 생계를 감당할 수 없다. 빌린 돈도 자신의 힘으로 갚지 못한다. 그는 영화 내내 자신의 힘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자신의 마차와 마주의 자동차가 부딪치는 은유적 사고로 위기에 처했을 때도, 수원댁이 없었다면, 그는 결국 말을 잃고 실직했을 것이다. 아들들도 마찬가지다. 시험에 세 번이나 떨어진 장남은 착하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막내아들은 어려운 가정 형편을 뻔히 알면서도 매일같이 도둑질이나 하는 철부지일 뿐이다.

 

하지만 영화 속 여성들은 다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강인하고 생활력 강한 여성들이다. 남편의 폭력을 이기지 못한 첫째 딸은 결국 한강에 몸을 던짐으로써 폭력에 저항한다.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일은 슬픈 일이지만 가장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둘째 딸은 신분 상승에 대한 강한 욕망을 가지고 결혼으로 팔자를 고치려고 하다가 실패한다. 하지만 곧바로 마음을 고쳐먹고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여성들은 항상 구체적으로 행동하고 구체적인 결과를 얻어낸다. 이 영화의 중심인 수원댁도 마찬가지다. 수원댁은 부잣집의 식모로 살아가지만, 자기 앞가림을 하면서 자기의 삶을 개척하는 여성이다. 수원댁은 춘삼이 경제적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항상 구체적인 도움을 주고, 동시에 가장으로서의 체면도 함께 살려준다. 수원댁이 없었다면, 장남이 시험에 합격하는 해피 엔딩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침내 장남 수업이 고시에 합격하던 날, 그동안 모인 적 없던 가족들은 한자리에 모여 수원댁을 어머니로 받아들인다. 무능하지만 착한 아버지는 아들의 구직과 능력 있는 어머니의 귀환으로 다시 가장의 자리를 찾고 가정은 복원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여성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을 영원히 옥죌 가부장제를 보호하고 가장의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애쓴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마부>는 기본적으로 1960년대 초반 급변하는 한국 사회를 살았던 어느 가난한 가족의 사실주의적 초상이며, 전통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옹호하는 강력한 가족주의 영화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몰락한 아버지 세대의 무능을 증명하고, 동시에 능력 있는 여성이 가족주의와 가부장제를 복원시키는 아이러니한 과정을 담아낸 일종의 유사 여성주의 영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부>를 연출한 강대진 감독은 대학에서 영화연출 교육을 받은 1세대 영화감독으로, 신상옥 감독의 연출부를 거쳐 당시 유행하던 멜로드라마 장르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다. <마부>는 그의 네 번째 영화이며, 이 영화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으며, 이는 서구 영화계에 한국영화를 알린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