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작가 제임스 밀러는 새로 펴낸 ‘기막힌 복제품’이란 책의 강연차 들른 이탈리아 투스카니에서 그녀와 만나게 된다. 아름답고 예민한 그녀는 홀로 아이를 키우며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프랑스 여성으로 제임스의 책 ‘기막힌 복제품’의 팬이다. 그의 책에 매료된 그녀는 하루 동안 투스카니의 시골 지역을 소개해 주겠다고 자청하고, 함께 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게 될 때쯤 두 사람은 ‘진짜 부부’인 척하는 장난스러운 역할극을 시작한다. 가벼운 마음으로시작한 그들의 역할극은 점점 진지해지고, 진실과 거짓이 모호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기 시작한다.


BHIFF NOTE

<체리향기>로 1997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란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이탈리아 투스카니를 배경으로 찍은 작품이다. 키아로스타미는 다큐멘터리와 픽션 작업을 꾸준히 해왔고, 때로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서로 섞어 허구와 진실이라는 영화 외적 테마를 실험해왔다. 이 영화가 전하는 주제 의식은 진짜와 가짜의 위계를 세울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영화는 공개 6년 후 사망한 키아로스타미 감독 말년의 걸작으로, 그가 영화 인생 내내 추구해왔던 주제를 서사화한, 영화 안과 밖에서 모두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랐고, 줄리엣 비노쉬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원제‘Certified Copy’는 우리말로 하면 ‘인증된 사본’이라는 의미인데, ‘사랑을 카피하다’라는 새로 지어진 우리말 제목에는 로맨틱한 의미가 더해지며 영화가 ‘복제’와 ‘사랑’ 두 가지에 대해 성찰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영국 작가 제임스 밀러는 <기막힌 복제품>이라는 책의 강연차 투스카니를 방문하고, 평소 팬이라고 하는 프랑스 여인 엘르가 그 강연장에 참석한다.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싱글맘 엘르는 제임스에게 하루 동안 투스카니 시골 지역을 소개해 주겠다고 나선다. 예술과 사랑에 대한 기나긴 대화에서 조금씩 어긋나고 있던 두 사람은 카페 주인이 부부로 오인하자 진짜 부부인 척하는 역할극을 시작한다.

15년 된 부부 행세를 하는 두 사람이 하루 동안 투스카니를 둘러보는 여정으로 이루어진 영화는 완벽하게 짜여진 서사인지 혹은 즉흥 연출과 연기로 이루어져 있는지 관객을 헷갈리게 한다. 남자주인공을 연기하는 윌리엄 쉬멜은 오페라 가수이며 이 작품이 첫 연기 도전이다. 쉬멜은 칸, 베를린, 베니스 등 3대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했으며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까지 받은, 누가 봐도 연기파 장인 줄리엣 비노쉬와 완벽한 호흡을 이루며 영화의 리듬감을 만들어간다.

형식적으로 본다면 단순한 스토리의 미니멀리즘 영화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사는 인생의 여러 방면을 드러내며 관객 각자가 자신만의 의미를 더하게 한다. 감독과 관객 사이에 핑퐁게임이 형성되며 쌍방향으로 서사가 완성되는 이 특별한 영화는 현실을 모방하는 예술 그 자체가 삶에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메타시네마’라고도 할 수 있다.

키아로스타미는 이 영화가 로베르토 로셀리니가 연출하고 잉글리드 버그만이 주연을 맡은 <이탈리아 여행>(1953)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행 영화 하면 떠오르는 <비포 선셋>이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들과도 닮았다. 중년 남녀의 도시 여행, 그 가운데 서로 닿았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관계,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삶의 진리 등, 여행지와 낯선 사람이 점차 익숙하거나 가까워지면서 느껴지는 감흥과 약간의 실망이 교차한다.

<사랑을 카피하다>가 여행지의 풍경이나 가짜가 진짜를 연기하는 상황극의 묘미로서도 훌륭하지만, 영화를 압도하는 것은 바로 줄리엣 비노쉬의 아우라이다. 이 배우는 얼굴과 몸짓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드리워진 주름까지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모두 활용한다. 원숙한 여성미와 미소 지을 때의 천진한 소녀미, 그리고 때때로 쓸쓸함이 전해지는 깊은 눈동자는 영화의 모든 것이다.

한 박물관에 소중히 전시된 복사본이 그 비하인드 스토리와 역사성 때문에 원본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니듯, 처음 동행한 사람들이 15년 된 부부보다 서로를 더 잘 꿰뚫어 볼 수도 있는 것이 인간사의 아이러니다. 반대되는 것들이 합을 이루며 유려하게 움직이는 카메라와 함께 거장과 그의 얼굴이 된 대배우의 협업이 얼마나 멋지게 빛나는지 확인할 수 있다._정민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