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과정에서 아들을 잃은 명선은 함께 탈북한 화신교 교주 신택으로부터 부활의 교리를 믿게 되고 두 사람은 작은 시골 마을로 정착지를 옮긴다.

다양성의 범주가 규격화되고 있다. 규격에 벗어난 다양성은 인정받지 못한 채 고립되고 차별받고 있다. 영화는 생존과 믿음을 고민하며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부여안고 위태롭게 서 있는 낯선 인간의 이야기이다.

확신과 의심 사이

조지훈 –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래머

최정민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신세계로부터>는 탈북하다가 아들을 잃은 탈북자 명선의 이야기다. 명선이 화신 火神, 그러니까 불의 신을 섬기는 교주 신택과 언제부터 함께 다녔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찜질방에서 처음 등장한 명선과 신택은 이제 막 경남 고성에 있는 집을 어렵게 구했다. 새로운 집에 이사를 마친 명선은 동네 식당에 나가 일을 해서 몸이 불편한 신택의 수발을 들고, 거리에 나가 전도를 하고, 신도를 모으기 위해 애쓴다. 명선이 신택을 돌보며 그의 곁에 있는 이유는 하나다. 화신을 믿고 준비하면 죽은 아들을 부활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부활이라니, 신택은 사이비 교주임에 분명하다. 가끔 진짜 신과 소통하기도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영 의심스럽다. 그저 어떻게든 명선을 자기 옆에 두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명선은 간절하다. 원래 사이비 종교는 인간의 간절함을 먹고 자라는 법이다.

영화는 사이비 교주 신택과 아들의 부활을 위해 어떻게든 10명의 신도를 모아야 하는 명선의 기묘한 여정을 따라간다. 백주대낮에 부활을 믿으라고 외치면서 전도를 하고 돌아다니는 젊은 여자를 마을 사람들이 좋아할 리 없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명선은 사람들의 편견과 핍박, 무시와 힐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 전도를 계속한다. 명선이 전력을 다하자 놀랍게도 신도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명선처럼 소중한 사람을 잃은 그들은 부활을 믿어야 하는 명선의 간절함에 마음이 움직였을 것이다. 그들은 신택이 아니라 명선을 따라왔다. 그들은 부활을 믿는 게 아니라 명선의 간절함을 믿고 있다. 사실 명선도 신택을 믿어서 따라다니는 게 아니다. 부활이 필요해서 부활을 믿기 때문에 그의 곁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세계로부터>는 믿음에 관한 영화다. 믿음과 의심의 경계에 서서 우리가 눈으로 보고 믿는 게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다. 영화가 관객을 자꾸 헷갈리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건 이 때문이다. 신택이 사이비 교주임을 확신할 때쯤 진짜 신과 소통하고 있는 게 아닌가 갸우뚱하게 만들고, 이 부활 의식이 사기라는 게 명확해질 무렵, 진짜 부활을 믿게 하는 단서를 던져 준다. 믿으려는 순간 의심하게 하고, 의심이 들 때 믿음의 증거를 보여준다. 영화는 이렇게 의심과 확신, 믿음과 불신 사이의 좁은 틈을 파고들면서 관객을 시험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영화의 마지막 반전이나 믿음의 결과가 아니라 ‘부활’까지의 고단한 과정을 기억해야 하는 영화인 것이다.

최창민 감독은 <프레스>와 <앵커>, 2편의 전작을 통해 이미 같은 주제를 집요하게 탐구해왔다. 2016년에 공개한 장편 데뷔작 <프레스>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전과자 영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화는 영일을 궁지에 몬 다음 관객에게 전과자인 영일이 진짜 범인인지 아닌지 질문한다. 그로부터 2년 후에 연출한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 <앵커>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모 없이 할아버지와 장애를 가진 남동생과 살고 있는 소녀 가장 한주에 관한 영화인데, 영화는 동생을 사라지게 한 후, 사라진 동생을 찾아다니는 한주의 고단한 여정을 담는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한주의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게 하고 급기야 관객들이 한주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그로부터 3년 만에 돌아온 최정민 감독은 이번엔 부활이라는 종교적 소재를 가지고 같은 질문을 다시 던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세계로부터>는 최정민 감독이 <프레스>에서 보여주었던 강한 설득력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관객을 시험에 들게 하기엔 부활이라는 소재가 너무 비현실적이고, 그래서 관객을 서사에 몰입시키는 데 자꾸 실패한다. 영화는 자꾸 결정적인 순간에 망설이고, 반전을 거듭하지만 그 반전의 목표가 단순하다. 그렇다고 <신세계로부터>가 담고 있는 주제에 공감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프레스>로부터 시작하여 <앵커>를 경유하여 <신세계로부터>에 이르는 최정민 감독의 궤적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희미해진 동시대 풍경 속에서 감독이 천착해온 ‘믿음’이라는 주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서울이 아닌 도시에서 영화감독으로 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영화를 만드는 삶을 선택하고 그 삶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숙명처럼 확신과 의심, 이 두 단어를 반드시 껴안고 살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신세계로부터>의 아들의 부활을 원하는 명선의 간절한 마음은 7년간 세 편의 장편영화를 통해 지치지 않고 같은 주제를 탐구해온 감독의 마음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모든 영화가 다 수작이거나,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은 없다. 중요한 건 창작을 계속하는 것이고, 동료와 함께 창작을 지속할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좋은 작품은 그 안에서 태어난다. 그러므로 <신세계로부터>가 명선 아들의 부활로 끝났듯, 최정민 감독도 다음 작품으로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 꼭 그렇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