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경쟁작

Competition











시놉시스

한 집에 살고 있는 이정과 수경은 그다지 살갑지 않은 모녀이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간 이정과 수경은 여느 때와 같이 다툼을 벌이게 되고 주차장에서 수경이 탄 차가 이정을 덮치게 된다. 이정은 수경의 급발진 주장을 믿지 않고 수경이 일부러 자신을 친 거라고 확신한다. 이정은 이제 지난 삶 모두를 수경에게 사과받고 싶다.



연출의도

우리는 이제 각자의 속옷을 가져야 한다.



BHIFF NOTE

캐릭터의 강렬함과 서사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놀라운 데뷔작

 

정민아 - 영화평론가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김세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어 뉴커런츠상과 관객상 등 5개 부문을 석권하면서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이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베를린영화제에도 공식 초청되었다. 이 영화는 부산영화제의 깜짝 행보 이후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으며 흥행에도 성공한 <벌새>(2018)의 여정을 잇는 올해 독립영화 최대 화제작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제목이 주는 강렬함이 있다. 두 여자가 같은 속옷을 입는다면, 아주 친밀한 가족이나 애인 사이일 것이다. 제목에 아이러니가 녹아있다면, 둘은 친밀함과 증오를 오가는 사이일 것이라는 상상이 가능하다. 그렇다. 영화는 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소통을 그리는 영화다.

엄마와 딸은 드라마의 오랜 주제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0)에서 <82년생 김지영>(2019)까지 대개 엄마와 딸이 갈등을 겪지만 그래도 엄마는 딸을 보듬어주고, 딸은 엄마를 이해한다. 피를 나눈 가족이니까. 그러나 웬걸, 이 영화는 그런 전형을 가볍게 뛰어 넘는다. 모녀는 서로를 죽일 듯이 미워하며, 엄마는 섹시함을 버릴 생각이 없고, 딸은 사랑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모녀하면 응당 떠오르는 드라마의 각종 클리셰를 벗어던지고 날 것 그대로 모녀 관계를 묘사함으로써 생생한 리얼리티와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남긴다.


영화는 팬티 더미를 빠는 딸 이정의 모습으로 시작하여 이정이 스스로 처음 속옷을 사는 모습에서 끝난다. 이정은 생리 중이다. 속옷과 생리, 두 가지 매개를 통해 우리는 모녀 관계의 역사를 유추할 수 있다. 속옷을 공유하는 것은 두 사람이 숨기는 것 없이 모든 것을 서로 알고 있고 위장이나 가식을 보여줄 필요가 없는 관계라는 의미다. 생리는 이정이 엄마 수경에 대해 기억하는 씁쓸한 기분과 엄마의 아기가 되고 싶다는 두 가지 기분을 떠올리게 한다.

 

각자 직업을 가지고 단둘이 사는 모녀 수경과 이정은 사이가 매우 나쁘다. 활동적이며 다혈질에 친구가 많고 애인도 있는 엄마와 소극적인데다 느리고 말수가 없는 딸은 매사 다투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다툼이 있던 어느 날, 수경의 차가 이정을 향해 돌진하여 이정의 다리가 부러진다. 이정은 엄마가 고의로 자신을 쳤다고 생각하고, 수경은 급발진으로 인한 우발적 사고라고 주장한다. 이 일로 둘은 법정에 갈 정도로 모녀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걸핏하면 딸에게 심하게 매질하고 욕하는 엄마, 애정을 갈구하며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기대는 딸, 두 사람 모두 정서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가난한 처지에 홀로 딸을 키워야 했던 엄마, 학대와 무관심에도 엄마와 간절히 소통을 원하는 딸, 두 사람 모두 이해할 수 있다. 대화를 할수록 의도가 빗겨가며 자꾸만 어긋나는 두 여자의 감정싸움은 영화에서 매우 억세고 사납게 묘사된다. 이런 표현은 이전 모녀 관계 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다.

 

수경은 결혼할 남자와 그의 딸과의 관계 형성에 문제가 생기고, 이정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동료와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낀다. 가장 친밀하고 가장 필요로 하지만 가장 증오하고 있는 이 모녀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두 사람은 아마도 다른 관계들을 만들어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딸은 엄마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어하고, 엄마는 딸로부터 감사를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일은 계속해서 어려움으로 남는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결을 사소한데서 시작하여 증폭시키며 디테일하게 쌓아나간다. 각자의 자리에서 만들어가는 인간관계 에피소드는 사람에 대한 기대감 이후 파생되는 애정, 신뢰, 갈등으로 빼곡하게 들어차 드라마를 풍성하게 만든다. 다양한 심리의 변화를 포착하는 섬세한 서사 전개는 양말복과 임지호라는 신선한 배우들의 현실감 넘치는 연기 앙상블로 인해 생생하게 다가온다. 여기에 깊이 있는 세심한 연출력이 더해져 관객의 몰입감을 효과적으로 끌어낸다. 놀라운 데뷔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