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경쟁작

Competition











시놉시스

버려진 매트리스 위에 곰팡이가, 곰팡이에서부터 한 생명체가 탄생한다.

생명체는 인간의 척추뼈를 빼앗으며 거주지를 옮겨 다닌다.

침대로부터, 곰팡이로부터,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연출의도

잘 정리되지 않은 연인 관계 사이에 남겨진 찌꺼기, (), 약속과 저주들은 어디로 갈까? 그 추상적인 덩어리들이 연인이 서식했던 침대와 뒤섞여 함께 하는 여정을 그리며 찌꺼기들의 최후를 그리는 동시에 침대가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연인과 시간을 추적한다. 거기서 이별하는 방법을, 잊혀진 사물과 곰팡이들은 어디로 흘러가서 모이는지를 알게 되지 않을까?



BHIFF NOTE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영화적 유희

 

조지훈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래머

 

박세영 감독의 장편영화 <다섯 번째 흉추> 제목만큼이나 기괴한 영화다. 곰팡이가 주인공이다. 이 기괴한 상상력의 시작은 박세영 감독의 대학 시절 자취 경험이었다. 어느 날 습한 자취방 벽 한쪽 구석에서 발견된 곰팡이, 없애도 자꾸 생기는 곰팡이를 포스터로 덮어두었고 이사하기 위해 포스터를 떼어냈을 때 그는 옆으로 퍼지면서 털까지 생겨나 입체적으로 자란 곰팡이를 발견했다. 환기가 안 되고 습한 집에서 발견되는 곰팡이는 영화 <기생충>에서 봤던 반지하에 살면서 몸에 배어버린 냄새와 같은 것이다. 주로 청년들이 사는 도시 원룸의 곰팡이는 경제적 빈곤의 증거다. 감독이 곰팡이를 보고 징그러움과 역겨움보다 슬픔과 애잔함의 정서를 먼저 느꼈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다섯 번째 흉추>는 박세영 감독의 이런 개인적 경험과 이때 느낀 감정을 발전시켜 확장한 영화다.

 

영화는 바로 이 곰팡이가 사람들의 흉추를 빼먹으며 인간을 닮은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한 연인이 생활하는 집의 매트리스에 피어난 곰팡이가 생명을 얻게 된 건 남자가 여자를 떠났기 때문이다. “죽어!”, 떠난 애인에 대한 여자친구의 증오와 분노가 뒤섞인 외침과 함께 태어난 곰팡이는 매트리스를 숙주 삼아 서울 곳곳을 이곳저곳 부유한다. 길가에 버려졌다가 모텔의 매트리스가 되기도 하고 차를 탔다가 사람들의 손에 들려 병원의 매트리스가 되기도 한다. 곰팡이 괴물은 매트리스를 따라 이동하면서 남자친구를 시작으로 길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노동자, 이제 막 이별하려는 연인, 죽음을 앞둔 중환자의 흉추를 차례로 빼먹으면서 성장하고, 점점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 과정에서 증오로 가득했던 곰팡이 괴물은 겉모습만 인간으로 변화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도 함께 하나씩 습득해 나간다.

 

박세영 감독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곰팡이 괴물의 기괴하고 이상한 여정을 눈을 사로잡는 감각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와 탁월한 상상력으로 밀도 있게 채워간다. 흐르는 시간은 감각적인 타임랩스 이미지를 통해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곰팡이 시점 숏은 곰팡이에 생명을 부여하고 관객이 감정을 이입할 여지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익스트림 클즈업과 환상적인 미장센, 정교하게 디자인된 사운드는 곰팡이 괴물의 변화를 기괴하면서도 아름답고, 징그러우면서도 환상적으로 담아낸다. 곰팡이 괴물의 생명력 강해질수록 영화는 리드미컬하게 속도를 더해가고, 이미지와 사운드는 더욱 풍성해진다. 이와 함께 이 영화만의 독특한 에너지가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긴장감도 함께 고조된다. 그러다가 영화의 후반부, 용달 트럭 운전사의 흉추를 빼서 마지막으로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 되려고 하는 곰팡이 괴물과 그걸 막으려는 운전사의 숨 막힐 듯한 사투를 담아낸 10여 분간의 차량 시퀀스에서 그 모든 에너지가 한 번에 폭발한다. 박세영 감독은 촬영, 편집, 사운드, 미술 같은 가장 기본적인 영화의 구성 요소들을 탁월하게 조합하여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시퀀스이자 이 서사의 절정에 해당하는 이 장면을 감각적이면서도 매혹적으로 담아낸다.

 

하지만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최소한의 프로덕션 조건에서 성취해낸 놀라운 시청각적 이미지와 기술적 완성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의 진짜 마법은 독특한 형식과 뛰어난 테크닉을 통해 아무 감정이 없는 곰팡이에 감정을 부여하고, 이를 바탕으로 구축된 기괴하면서도 다층적인 서사 속에서 애잔함과 슬픔의 감정을 창조함으로써, 관객들이 이 모든 걸 매혹적으로 느끼도록 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 특별한 재능은 최근 한국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것이다. 전통적인 영화적 관습 안에서 특별한 성취를 이루어낸 김보라 감독의 <벌새>,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 김세인 감독의 <같은 속옷을 입은 여자>와 같은 호평을 받았던 독립영화들과는 달리 박세영 감독의 <다섯 번째 흉추>는 작년에 처음으로 공개되었던 이재은, 임지선 감독의 <성적표의 김민영>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재능의 등장을 알리는 징후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메시지 전달에 집중하고, 어떻게든 영화를 정치적, 사회적 문제와 연결시키려고 하는 한국 독립영화 특유의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낸 특별한 영화들이다. 난 이 정도로 서사와 메시지보다 영화적 유희에 집중하는 영화를 별로 본 적이 없다. 박세영 감독의 다음 영화가 기대되는 건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