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작

Invitational









시놉시스

프레스 공장에서 단순하고 반복된 생활을 보내던 영일에게 젊은 여자 보라가 찾아온다.


연출의도

외부의 압력은 내부를 변화시킨다.


수상 및 상영내역

2016년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한국후보작 선정
2016년 11회 파리 한국영화제 –페이사주 부문 초청상영
2016년 17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상영
2016년 4회 무주산골영화제 –장편경쟁 ‘창’ 부문 상영


BHIFF NOTE

편견과 진실사이, 그 좁은 틈을 응시하며 - 최정민 감독의 <프레스>

일단 마음의 문이 닫히면 누군가에게 그 문을 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절대 상처받지 않으려는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는 그 일이 유독 어려운 건 그 문을 열면 탈이 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제 막 감옥에서 출소한 중년 남성 영일도 그렇다. 그는 전에 일하던 공장에서 다시 일을 시작한다. 범죄자 관상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범죄자처럼 보이지 않는 평범한 얼굴을 가진 영일과 그에게 딱히 친절하게 굴지 않는 사장을 보니, 영일이 왜 전과자가 되었는지, 사장은 왜 영일을 다시 일하도록 배려해 준 것인지 그 사정이 궁금하기도 하다. 여튼 영일은 다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게 되었다. 익숙하지만 전과는 다른 어색하고 불편한 일상, 일터와 집을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이 조용히 반복된다. 가끔 지루해지면 노래방에 가는데 혼자 부르는 노래가 흥겨울 리 없고, 가끔 예전 친구를 만나도 전과자라는 굴레는 친구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세상은 전과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아무도 곁에 오려 하지 않는다. 평범한 삶이 불가능해진 그는 오직 일터에서만 살아있는 듯 보인다. 그는 이제 완벽하게 혼자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운영하는 사회적응 프로그램 담당자 보라를 알게 된다. 보라는 젊고 예쁘다. 게다가 친절하기까지 하다. 사기를 당할 뻔한 휴대폰 가게에 가서 항의해 주고, 문자를 하면 꼬박꼬박 답도 해준다. 드라이브도 함께 가서 놀아주기도 한다. 보라의 친절은 굳게 닫힌 영일의 마음의 문에 균열을 낸다. 영일은 교회에 나가 열심히 활동한다. 옷도 더 단정하게 입고, 표정도 한층 밝아진다. 영일이 가장 고독했을 때,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을 때, 영일 앞에 나타난 보라는 구원자나 다름없다. 마음의 문이 열리자 그 안에 보라를 향한 마음이 가득 차기 시작한다. 하지만 보라의 친절은 개인적인 애정이 아니라 일종의 직업적, 업무적 친절이다. 친절에도 종류가 있다는 걸 몰랐던 영일은 그녀의 친절과 사랑을 혼동한다. 고독한 자의 비극은 상대방의 친절을 착각하는 데서 시작된다. 인간관계에서 마음을 많이 준 쪽은 반드시 상처받게 되어 있고, 한 사람에게 몰입한 후에 오는 후유증은 그 강도가 상당하다. 상처를 받고 폭발하기 직전에 다다른 영일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자꾸 넘는다.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폭주하고, 마음에 몸이 끌려다니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누구든 궁지에 몰린 영일이 결국 사고를 칠 거라 예상했을 것이다. 그는 전과자이기 때문이고, 모두 그가 전과자라는 사실에만 집중할 뿐, 왜 전과자가 되었는지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일의 고독은 결국 세상의 편견에서 온 것이고, 관객의 시선도 그러한 편견의 일부다. 영화는 편견과 진실 사이, 그 좁은 틈을 파고든다. 그리고 관객들과 영일 주변 인물들의 선입견과 편견을 동력으로 서사의 한 축을 전진시키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영일은 아무리 폭주해도 사고를 칠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 준다. 보는 이의 편견과 선입견을 단번에 전복시키는 결말은 결국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고, 우리는 그제서야 영일이라는 인간을 제대로 바라보게 된다.

2018년 두 번째 장편영화 <앵커>를 완성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 후 최근엔 <신세계로부터>의 완성을 앞두고 있는 최정민 감독은 2017년 어렵게 완성한 이 장편 데뷔작에서 화려하진 않지만 안정적이고 뚝심있는 연출력을 보여준다. 출소한 한 전과자의 삶, 그의 욕망과 사랑의 감정을 묵묵하고 정직하게 담아내는 한편 인물 간의 충돌과 변화하는 감정, 편견과 선입견을 잘 아우르면서 관객의 시선을 끝까지 붙잡아두는 데에 성공한다. 또한 박정범 감독의 장편 데뷔작 <무산일기>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배우 진용욱도 세상일에 심드렁한 무표정함에서부터 갑자기 찾아온 폭풍처럼 몰아치는 감정까지, 영일이 겪게 되는 진폭이 큰 감정 변화를 섬세한 연기를 통해 그려내면서 노동자의 건조하지만 뜨거운 내면을 성공적으로 담아낸다.

마지막까지 영일은 자신을 해고한 공장에 다시 들어가서라도, 감옥에 가기 전에 멀쩡하게 사용했던, 하지만 이제는 고장 나 버린 프레스를 굳이 다시 고치려고 애쓴다. 그의 눈물겨운 노력은 보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억울한 옥살이를 보상받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삶을 전과자가 되기 이전으로 간절하게 되돌리고 싶을 뿐이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부디 영일의 그 간절한 노력이 작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길 소망한다.

_조지훈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