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작

Invitational









시놉시스

49세 해고노동자 재복은 5년째 서울에서 동료들에게 밥을 해주며 농성 중이다. 노조가 정리해고무효 소송에서 최종 패소하자 재복은 10일간의 휴가를 받는다. 인천 집으로 간 재복은 딸들의 대학 등록금 예치금과 롱 패딩 값을 벌기 위해 휴가 기간에 가구공장에서 일한다. 5년 만의 노동, 딸들과의 소소한 일상이 만족스러울 즈음 재복은 정식 취업을 제안받는데.......


연출의도

10년이 넘게 농성 중이던 한 해고노동자는 농성장을 세 번 나갔고 세 번 돌아왔다. 그에게 왜 돌아왔냐고 물었다. 왜 돌아왔는지 안다면 어떻게 10년 넘게 거리에서 싸울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일정이 있으니까’, ‘끝내야 되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는 늘 돌아와서 일정을 지켰고 정말 ‘끝’이라는 걸 냈다. 그가 농성 중에 농성장 밖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을지 집중해보려 했다.


수상 및 상영내역

2020년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경쟁작
2020년 46회 서울독립영화제 - 장편 대상, 독립스타상 : 배우부문, 독불장군상 등 수상
2021년 64회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 금문상-신인감독상 특별언급 수상


BHIFF NOTE

어느 장기 해고노동자의 낯선 휴가 - 이란희 감독의 <휴가>

가구공장 노동자 재복은 부당해고에 맞서 농성 중이다. 길어진 농성 탓에 모두 지쳐가던 와중에 재판에서까지 패하면서 농성장의 분위기는 최악으로 변해버린다. 실망과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던 중 누군가 갑자기 휴가를 가자고 제안한다. 이 기상천외한 제안 덕분에 재복은 예상치 못한 휴가를 떠나게 된다.

농성장을 떠난 재복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의 집이다. 농성 기간 동안 비워놓았던 집에는 밀린 숙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싱크대 배수구는 막혀 있고, 냉장고는 텅 비어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낯설어서인지 아빠에게 짜증스러운 태도를 감추지 않는다. 게다가 첫째 딸은 대학에 합격했다면서 입학 예치금을 당장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밀린 가사노동이야 몸으로 해결하면 되지만, 돈 문제는 해결할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친구에게 어렵사리 돈 이야기를 꺼내보지만 친구는 돈을 빌려주는 대신 자기 공장에서 임시로 일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친구 밑에서 일한다는 것도 걸리고, 낯선 환경에서 낯선 동료와 어울려 일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재복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휴가’라는 제목과 달리 이 영화의 주인공 재복은 끊임없이 일을 한다. 집에서는 막힌 배수구를 뚫고, 냉장고와 선풍기를 닦고, 빨래를 하고, 밥을 차린다. 임시로 구한 일자리에서는 청소를 하고 목재를 깎고 공구를 다듬는다. 이런 주인공의 상황만 놓고 보면 ‘휴가’보다는 ‘낯선 일상’이 영화의 제목으로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굳이 ‘낯선’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인 이유는 재복의 태도 때문이다. 1,800여 일을 농성장에서 보낸 탓인지 재복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다. 재복의 몸짓과 말투 하나하나가 이런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쌀쌀맞은 말투로 쏘아대는 딸들에게 재복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심지어 딸이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축하한다”는 의례적인 인사말도 건네지 못한 채 냉장고만 닦는다. 친구를 대하는 태도나 임시 일자리에서 만난 어린 동료를 대하는 태도도 어색하기만 하다. 재복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즉 일상의 감각을 잃어버린 상태다.

<휴가>는 해고 노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전형적인 노동영화와는 차이가 있다. 이 영화에는 치열한 시위 현장의 모습도 없고 음험한 기득권 세력도 없다. 투쟁심에 불타는 인물이나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의 대부분은 집으로 돌아온 재복의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감독은 굳이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의 말, 그의 몸짓을 적절한 거리를 두고 지켜볼 뿐이다. 재복의 마음을 헤아릴 단서가 될 수 있는 장면들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내적 갈등과 내면의 고통을 헤아리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남게 된다.

사건이나 심리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휴가>는 서사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영화다. 인과율이 분명한 서사에 익숙한 관객 입장에서는 이란희 감독이 선택한 이런 방식이 낯설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이런 서사의 예측 불가능성이 상당한 긴장과 정서적 고양을 이끌어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재복은 중요한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즉, 휴가를 마치고 농성장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가망 없는 농성을 멈추고 가족을 돌보기 위해 남을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닥쳐 온 것이다. 휴가 마지막 날, 재복은 공들여 도시락을 싼다. 그 도시락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혹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관객은 알 수 없다. 재복의 결정을 예측할 수 있는 단서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관객은 오로지 다음 장면을 기다려야 한다. 이 궁금증은 재복의 마지막 동선(動線)을 따라간 후에야 해소된다. 그는 농성 현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도시락은 고공농성을 시작한 동료를 위한 것이었다. 영화는 이 극적인 귀환의 순간에도 여전히 재복의 마음속 깊은 곳을 비추지 않는다. 대신 그가 정성껏 준비한 도시락이 높은 철탑 위로 서서히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많은 영화들이 사람의 마음을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사건의 인과관계를 명백히 밝힐 수 있는 것처럼, 선택의 순간에 확신에 찬 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말해왔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오히려 주저하고 머뭇거리고 갈팡질팡하는 재복의 모습이 현실에 더 가깝지 않은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철탑을 향해 올라가는 도시락의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가슴 아프다. 그 도시락은 재복이 동료와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자식들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딸은 재복에게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빠 바보야?” 재복의 마지막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살다 보면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_김이석 (영화평론가, 동의대학교 영화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