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작

Invitational









시놉시스

7년간 근무했던 회사에서 하청 업체로 파견 명령을 받은 정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보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불편해하고, 현장 일은 낯설다. 그러나 반드시 1년을 채워 원청으로 돌아가고 싶은 정은은 ‘막내’의 도움으로 점점 적응해가는데… 1년의 파견,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도약하다!


연출의도

어느 날, 나는 절망에 빠진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내게 심혈을 기울여 희망적인 일을 하려고 했지만, 인간관계 때문에 희망의 반대편에 주저앉아 매일 우울과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 과정이 반복되던 어느 날, 그는 불현듯 무언가를 다짐했다. 그건 오뚝이처럼 곧바로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고 하는 다짐이었는데, 억지로 급하게 상황을 극복하려고 하면 다시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하였다. 세상이 나를 해고하더라도,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 목에 감긴 팽팽한 목줄을 타인의 손에 쥐여주고선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외다리 지옥 길을 걸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상 및 상영내역

2020년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배우상 수상
2021년 8회 들꽃영화상-시나리오상
2021년 제38회 파지르국제영화제 이스턴비스타경쟁-심사위원 특별언급 수상


BHIFF NOTE

냉혹한 기업 시스템에 인간에 대한 예의는 없다-이태겸 감독의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삶이 노동이고 대다수가 노동자인 것을 감안하면, 영화 속 노동의 풍경은 그야말로 가난하다. 재화가 없다는 게 아니라,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영화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일반 대중영화 쪽으로 넘어오면 더욱 그러하다. <노마 레이>(1979), <실크우드>(1983), <메이트완>(1987)이 나온 게 언제인데 더 기억될 만한 클래식은 별로 없다. 근래 니키 카로의 <노스 컨츄리>(2005), 스테판 브리제의 <아버지의 초상>(2015), 앤드류 부잘스키의 <그녀들을 도와줘>(2018) 같은 영화들이 나왔지만, 앞선 영화들의 무게를 넘어서기엔 역부족이다. 한국영화로 넘어오면 더 황량하다. 다큐멘터리 외에 노동을 전면적으로 다루는 영화 문화 자체가 약하다. 그런 영화는 빨갱이 영화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카트>(2014)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 같은 영화가 간간이 등장하는 데 주목할 만하다. 만듦새에 대한 평가를 떠나 이런 작품이 꾸준히 등장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노동의 환경을 바라보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취라 하겠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가 개봉했다. 전자가 어느 정도 코미디를 녹여낸 반면,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온전히 사실주의의 태도를 견지한다. 본사에서 일하다 외딴 도시에 있는 하청업체에서 파견 노동자로 일하게 된 정은(유다인 분)의 이야기는 건조할 뿐만 아니라 유머를 위한 어떤 장치도 삽입하지 않는다. 이태겸 감독은 그게 맞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인물이 찍혀서 좌천당한 처지임은 굳이 사연을 들춰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법, 그런 사람에게 헛웃음을 안기는 일 따위는 저지르지 않겠다는 거다. 놀라운 것은, 이 영화에서 벌어진 일이 수십 년 전에도, 아니 그보다 훨씬 전에도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사무직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밉보일 경우, 그는 일자리가 없는 책상 – 그야말로 책상만 있다 – 에 배치된다. 하루 종일 벽을 바라보고 있거나, 손님을 응대하거나, 업무규정을 읽는 게 일과의 다다. 모두가 바쁘게 일하고 있을 때 혼자 일이 없는 자의 심란함. 거기에서 조용히 물러나기를 바라겠지만, 뻣뻣하게 저항할 경우엔 더욱 가혹한 발령이 이어진다. 정은처럼 한번도 해보지 않는 일자리에 던져놓고 사표를 제출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정은이 일하는 직장이 어디인지 밝히고 있지 않으나 실제로 일어난 일임은 명시했다. 2013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김미례의 <산다>가 공개됐다. KT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온 노동자들이 회사의 일방적 퇴직을 거부한다. 그런 노동자들에게 가한 회사의 행태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에 어느 정도 들어 있다. <산다> 상영 뒤 관객과의 진행을 맡았던 나는 수많은 관객들로부터 부당한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사무직 근로 여성 노동자를 전신주 위에 올라가게 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전신주에 올라가는 게 뭐 그리 무섭겠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중년이 지난 여성에게 갑자기 거기 올라가라고 말하면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기 마련이다. 더욱 비참한 것은 해고라는 카드에 맞서기 위해 이를 악물고 그런 순간을 버텨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는 그해 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았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KT의 대표이사가 물러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기억은 거기에서 멈췄고, 7년이 지난 시점에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와 만났다. 세상은 이리도 변하지 않는 것일까.

영화의 중심인물은 정은이지만, 나는 이 영화가 극 중 막내로 불리는 서충식(오정세 분)의 영화라고 생각했다. 정은이 관찰자의 시점에서 막내를 읽어 가는 그런 영화처럼 보였다. 그는 나이에 비해 늦게 현장 노동자로 취업했기에 막내로 불린다. 그는 일과 후 집으로 가는 대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한다. 끝난 뒤에도 대리기사 같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언제나 수면이 부족한 그는 일과 도중 종종 잠에 빠지곤 한다. 정은은 그더러 욕심도 많다고 흉을 본다. 과연 그는 돈에 환장한 사람일까. 현장소장은 정은에게 ‘희망’이라는 말을 썼다. 본사에서 근무했던 그에겐 희망이라는 말이 어울린다는 거다. 실제로 정은은 1년이 지나면 본사로 되돌아가기를 꿈꾼다. 그에 비해 막내의 삶은 노동의 연속이다. 영화는 끝부분에 가서야 왜 막내가 그토록 일해야 했는지 제대로 드러낸다. 열악한 노동의 현장, 하청업체의 낮은 임금과 처우, 벗어날 수 없는 하층민의 계급. 노동이 곧 삶이었던 막내에게 마침내 주어진 것은 무엇이었나, 영화는 묻는다.

‘백척간두’라는 말이 있다. 사전의 의미로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을 이르는 말’이다. 백 자를 미터로 계산해 보니 얼추 30미터다. 인간이 죽음을 무릅쓰고 올라갈 수 있는 높이가 그 정도 된다는 뜻이다.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 해도 인간의 신장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정은과 동료들이 일과 중 올라가야 하는 송전탑의 높이는 대략 50미터에 이른다. 백척간두의 1.7배에 해당하는 높이다. 백척간두라는 말을 지어낸 사람은, 송전탑의 높이가 50미터에 이르게 설계하도록 만든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50미터는 곧 인간에 대한 예의 없음의 높이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인간에 대한 예의라곤 없는 냉혹한 기업 시스템에 대해 분노하는 작품이다. 김영하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나온 게 2005년이다. 우리는 영화의 요상한 내용처럼 모던한 사회를 살고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기본적인 노동의 권리조차 주어지지 못한 인간과 현실에 대한 영화가 2020년에 나왔다. 이건 무슨 아이러니인가.

_이용철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