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하나가 있다. 그 집은 이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지붕과 벽이 허물어지면서 집안 내부의 물건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들 역시 바닥에 떨어져 부서지고 사라져간다. 모든 것이 소멸된 순간, 혼자 남은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집은 인간의 내면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메타포이다. 우린 삶의 어떤 순간에 영원할 거라고 믿었던 가치들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마치 나 자신이 부서지는 것처럼 그 과정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모든 것이 소멸된 그 폐허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편안한 안식처이자 개인적인 공간인 ‘집’ 안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발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왜 그 존재는 서서히 붕괴되는 집의 풍경 속에서 위태롭고 소외된 모습으로 발견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조용히 지켜봐야 하는 관객은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익숙한 집에서 인간의 내면을 매우 가까이 바라볼 수 있는 경험. 그 자체만으로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이 표현해낼 수 있는 그 이상의, 강력한 상상력과 시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세밀한 질감의 드로잉 기법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인간의 내면을 더욱 깊이 바라볼 수 있도록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절제된 형식과 명확한 메시지로 완성된 <존재의 집>은 정유미 감독의 영화적 세계가 여전히 확장하고 있다는 것을 온전히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_이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