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체 말단 직원 유나와 정식은 상황극을 즐겨한다. 오랜만에 유나 앞에 나타난 정식은 큰 돈을 훔쳐 남미로 도망가는 상황극을 시작한다. 하지만 유나는 오늘따라 정식이 진짜 돈을 훔친 것만 같다.


연출의도

에메랄드빛 바다와 한강의 차이, 연극과 현실의 차이, 연애와 결혼의 차이, 디지털로 연결된 세상과 살의 접촉으로 연결된 세상의 차이, 진실과 진짜의 차이.


BHIFF NOTE

친숙한 국영문 제목만 놓고 보자면 바로 김상진 감독과 샘 페킨파 감독의 동명 영화를 연상시킨다. 돈을 강탈하는 '케이퍼 무비'를 오마주하는 듯한 의도적인 제목은 호기로운 선언처럼 들린다. 영화가 시작하면 가면을 쓴 정식은 생기 없는 표정의 유나를 데리고 달린다. 을지로의 미로 같은 골목을 유유히 빠져나오는 주인공 커플은 장르 영화의 컨벤션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범죄 영화의 장면을 슬쩍 차용하는 솜씨와 가벼운 유머 같은 영화적 트릭이 어우러져 흥겹다. 숨 막히는 현실에서 탈출을 꿈꾸는 이들의 진심이 서서히 드러날 때, 영화의 야심은 다소 소박한 것으로 판명나지만 오히려 진실해진다. 꿈을 잃어가는 시대에 맞서 이 가난한 청춘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끝없는 줄타기를 한다. 마침내 한강의 대교 위를 신나게 질주하는 정식과 유나, 어디에도 그들을 위한 안식처는 없다는 한계에 봉착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다. _전종혁